1957년 이 날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애틀과 타코마에서 유일한 공연을 펼칩니다.
1957년 이 날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애틀과…
1957년 9월 1일, 엘비스 프레슬리는 태평양 북서부에 깊은 인상을 남긴 연이은 공연으로 시애틀과 타코마의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로큰롤의 아이콘은 타코마의 링컨 보울에서 마티네 콘서트를 위해 처음 무대에 오른 후 시애틀의 식스 스타디움으로 이동해 저녁 공연을 열었는데, 당시 시애틀 역사상 단일 공연으로는 가장 많은 16,200명의 팬이 모인 공연이었습니다.
당시 22세였던 프레슬리는 “Heartbreak Hotel”, “(Let Me Be Your) Teddy Bear”, “Jailhouse Rock” 등 자신의 차트 상위권 히트곡으로 가득한 세트를 선보였습니다.
엘비스는 조던나이어스 쿼텟과 3인조 뮤지션의 지원을 받아 45분 동안 관객을 시종일관 열광하게 하는 에너지 넘치는 공연을 펼쳤습니다.
타코마에서는 링컨 보울의 친밀한 분위기 덕분에 약 6,000명의 팬들(대부분 10대 소녀들)이 공연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타코마 뉴스 트리뷴의 보도에 따르면, 엘비스는 세트리스트를 따라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등 무대 위에서의 존재감이 대단했습니다.
돈 던컨 기자는 이 공연을 “반전이 있는 벌레스크”라고 표현하며 엘비스의 움직임과 리듬이 관중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했습니다.
타코마 공연이 끝난 후 엘비스와 그의 밴드는 곧바로 시애틀로 이동해 식스 스타디움에서 저녁 공연을 열었습니다.
1957년 이 날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애틀과
엘비스는 “하트브레이크 호텔”로 콘서트를 시작하여 “엘비스 프레슬리의 국가”라고 소개한 “하운드 독”의 열창으로 공연을 마무리하며 흥겨운 공연을 펼쳤습니다.
관중들은 공연 내내 소리를 지르고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습니다.
열광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엘비스의 차량으로 오인한 누군가가 미등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을 제외하고는 관중들이 대체로 질서를 잘 지켰다고 보고했습니다.
마지막 공연을 마친 엘비스는 관중들이 그를 다시 보기 전에 렌트한 캐딜락을 타고 재빨리 경기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다음 날, 엘비스는 시간을 내어 자신의 공연에 대한 리뷰를 읽었습니다.
그는 던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나에 대해 쓴 최고의 기사”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1957년 이 날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애틀과
이 만남은 던컨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나중에 그는 록 스타와의 대화를 자세히 다룬 후속 칼럼을 썼습니다.
1957년 엘비스의 퍼시픽 노스웨스트 공연은 스포캔, 밴쿠버, 포틀랜드 등을 들르는 대규모 투어의 일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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